[데스크칼럼] 롯데와 롯데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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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사회부장

부산 사람들은 롯데 아파트에 살며 롯데 백화점과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롯데 야구로 주말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롯데가 부산의 향토기업이라고.

이런 착각은 롯데자이언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부산 사람들의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사랑은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유별나다. 애착이 분별의 눈을 어둡게 하는 걸까. 재벌기업 롯데는 기업의 격에 맞지 않게 정도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대호의 홈런 한 방에 부산 사람들은 분별심까지 날려 버린다. 기업 롯데와 프로야구팀 롯데자이언츠가 한 단어로 혼동되는 게 예사다.

롯데는 헐값에 땅을 확보한 뒤 당초 약속을 미룬 채 이익만 챙기는 수법에 능하다.

10여 년 전이다. 부산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 터에 부산롯데타운 건립이 시작됐다. 시청 터 주변은 영세 상인들의 삶터였다. 하지만 이 땅은 토지수용위원회에 의해 강제수용돼 롯데로 넘어갔다. 지주들은 헐값에 쫓겨났다. 부산 시민들은 부산시와 롯데의 횡포에 애써 눈을 감았다. 초고층 호텔과 쇼핑시설이 들어서면 부산이 살 길이 열린다는 선전에 솔깃해진 탓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부산롯데타운 자리에는 백화점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이 바라던 초고층 랜드마크 사업은 땅파기만 하고 있다. 일부를 주거시설로 용도전환하거나 백양산골프장을 허가해 줄 때까지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시중에 유통된 지 수년째다.

롯데는 같은 방식으로 김해에서도 짭짤한 재미를 봤다.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에 건설 중인 김해관광유통단지는 지난 1996년 시작됐다. 87만㎡ 부지에 호텔 워터파크 어드벤처월드 실내스키장 백화점 쇼핑몰을 지어 인근과 일본 관광객까지 끌어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허허벌판에 아울렛몰만 덩그러니 세워놓고 핵심시설은 착공도 않고 있다. 개발이익이 1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롯데가 부산에서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은 과독점이다.

서면 롯데백화점이 문을 연 이듬해인 1997년, 향토 백화점인 서면 태화쇼핑은 부도를 냈다. 사장은 목숨을 끊었다. 2000년 동래의 세원백화점이 롯데에 넘어가 롯데백화점 동래점이 되기까지 지역 백화점 일곱 개가 무너졌다. 그 상권은 모두 롯데에 넘어갔다.

과독점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롯데는 부산진구 부암동 롯데마트부산점을 열면서 치졸한 방법을 동원했다. 지난 2008년부터 다른 건설업체가 건축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더니 개점일이 다가오자 건축주를 롯데쇼핑으로 바꾸었다. 인근 당감새시장 영세 상인들의 상권은 죽어버렸다. '목 좋은 곳에 포클레인 소리가 들리면 일단 롯데를 의심하라'는 말까지 나돈다.

10여 년 전, 부산 중앙동 부산롯데타운이 조성되면 주변에 '신격호 거리'를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순진한 주장을 하는 이가 없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롯데에 저항하자는 움직임이다. '롯데 자이언츠'를 '부산 자이언츠'로 바꿔 부르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1월 이대호 선수의 연봉협상에서 7천만 원을 더 주지 못하겠다고 버틴 롯데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 영도다리 철거 후 전시관을 짓는 비용을 부담하라는 부산시민의 요청을 소송으로 맞대응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부산 북항에 지어질 오페라하우스 건설비용을 대겠다고 해 놓고도 감감무소식이다.

신 회장은 홀수 달에 한국에서, 짝수 달엔 일본에서 머물던 오랜 전통을 깨고 한국에서 머물며 경영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한다. 그의 귀에도 '부산자이언츠' 얘기가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약속 어기기와 과독점 방식을 지양하고 지역과 상생하라는 시민의 목소리가 전달됐는지 궁금하다.

기업의 이미지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이언츠 앞에 붙은 '롯데'를 떼고 '부산'을 붙이자는 일각의 움직임이 지금은 가랑비 한 줄기에 그칠 것이다. '부산자이언츠'라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ye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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